과부의 두 렙돈 헌금
정량 체계근거 확인됨헌금함 앞에 사람들이 지나갑니다. 많이 넣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주 작은 소리를 놓치지 않으십니다. 한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이 장면은 혼자 떠 있지 않습니다. 바로 앞에서 마가는 긴 옷과 높은 자리를 좋아하면서도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서기관들을 경고합니다(막 12:38-40). 그 직후 예수님은 헌금함 앞에 앉아 계십니다.
여러 부자가 많이 넣는 것을 보시고, 한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 것을 보십니다(막 12:41-42). 감동적인 미담만이 아닙니다. 약자의 삶을 삼키는 종교적 위선 앞에서, 이 작은 동전은 더 날카롭게 들립니다.
예수님의 판정은 액수 비교가 아닙니다. 남긴 것의 비교입니다. 부자들은 풍족한 중에서 넣었습니다.
과부는 가난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습니다(막 12:44; 눅 21:4). 그래서 두 렙돈은 작아서 의미 있는 돈이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 남아 있던 생계 전체였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마가가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라고 풀어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렙돈을 데나리온의 1/128, 고드란트를 1/64로 보면, 두 렙돈은 하루 품삯의 1/64 정도입니다. 2026년 한국 최저임금 8시간 일급 82,560원을 보조선으로 삼으면 대략 1,300원 안팎입니다.
작디작은 동전 두 개. 그러나 예수님 눈앞에서는, 풍족함의 일부보다 더 큰 전부였습니다.
흔히 이렇게 읽는다 — 예수는 과부가 부자들보다 객관적으로 더 큰 금액을 냈다고 칭찬하신 것이다.
본문이 말하는 것 — 본문은 정반대로 말한다. 부자들은 많이 넣었지만 풍족한 중에서 일부를 넣었고, 과부는 작은 두 렙돈을 넣었지만 그것이 자기 생활비 전부였기 때문에 '더 많이' 넣은 것으로 평가된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마가가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라고 풀어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렙돈을 데나리온의 1/128, 고드란트를 1/64로 보면, 두 렙돈은 하루 품삯의 1/64 정도입니다. 2026년 한국 최저임금 8시간 일급 82,560원을 보조선으로 삼으면 대략 1,300원 안팎입니다.
작디작은 동전 두 개. 그러나 예수님 눈앞에서는, 풍족함의 일부보다 더 큰 전부였습니다.
숫자가 아니라 무엇을 말하려는
문장이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