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 가슴을 치는 몸짓은 깊은 슬픔·비탄·충격을 드러내는 행동으로 널리 알아들을 수 있었습니다. 누가는 십자가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가 일어난 일을 본 뒤 이 행동을 하며 돌아갔다고 기록해, 처형 장면이 단순한 구경거리로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누가복음 23:48에서 구경하러 모인 무리는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갑니다. 이 반응은 백부장이 예수를 의인이라 부르고, 예수를 아는 사람들과 갈릴리에서 따라온 여자들이 멀리 서서 지켜보는 장면 사이에 놓입니다. 누가는 같은 죽음을 본 이들의 반응을 하나로 평평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가슴을 친다는 표현은 누가복음 18:13에서 세리가 죄를 고백하며 가슴을 치는 장면에도 나옵니다. 두 본문은 이 몸짓이 자기 비탄과 통회를 나타낼 수 있음을 보여 주지만, 누가복음 23:48의 군중에게서 각 사람의 회심 여부나 이후 행동까지 동일하게 결론 내리게 하지는 않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군중에게 준 충격과 애통이 먼저 기록됩니다.
따라서 이 장면은 군중을 한 덩어리의 악인이나 한 덩어리의 회심자로 규정하는 데 쓰기보다, 공개 처형을 보던 사람들이 죽음의 의미를 피할 수 없게 된 순간으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흔히 이렇게 읽는다 — 가슴을 친 군중 전원이 그 자리에서 완전한 회심에 이르렀다는 해석.
본문이 말하는 것 — 누가복음 23:48은 그들이 사건을 보고 가슴을 치며 돌아갔다고 전한다. 애통의 행동은 분명하지만, 각 사람의 신앙과 이후 행적은 이 구절만으로 획일적으로 정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가슴을 친 군중 가운데 누가 이전에 예수를 처형하라고 외친 사람들과 새로 모여든 구경꾼이 각각 어느 비율이었는지는 판별할 자료가 없다. 장면은 군중의 정확한 구성보다 그들이 목격한 사건과 애통의 반응에 초점을 둔다.

누가복음 23:48에서 구경하러 모인 무리는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갑니다. 이 반응은 백부장이 예수를 의인이라 부르고, 예수를 아는 사람들과 갈릴리에서 따라온 여자들이 멀리 서서 지켜보는 장면 사이에 놓입니다. 누가는 같은 죽음을 본 이들의 반응을 하나로 평평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이 몸짓이 말하려던 마음을
나는 어떤 몸짓으로 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