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이 비유의 청지기는 단순한 집안일 담당자가 아니라 부유한 지주의 토지와 채권을 관리하던 자산관리자에 가까웠습니다. 그는 해고를 앞두고 채무 문서를 고쳐 채무자들이 훗날 자기 집으로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본문의 두 사례는 기름 약 3,200리터와 밀 약 35,000리터에 해당하는 대규모 거래이며, 감면액은 각각 대략 500데나리온으로 계산됩니다.
한 데나리온을 보통 일꾼의 하루 품삯으로 잡으면, 한 사람에게 깎아 준 금액만 약 500일 품삯, 곧 1년 반이 넘는 노동의 대가에 해당합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받은 호의에 환대와 도움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으므로, 청지기는 남은 권한과 짧은 시간을 이용해 자신의 미래를 관계 속에 마련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충격적인 장면을 통해 사라질 재물을 붙들기보다, 그것을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 나라의 환대를 준비하는 데 사용하라고 제자들을 깨우십니다.
비유의 중심은 다가올 결산을 알아차린 사람이 현재 손에 있는 자원을 미래를 위해 과감하게 사용한 선견지명입니다. 주인의 칭찬은 청지기가 위기를 앞두고 영리하게 행동한 점에 집중됩니다. 예수님은 이 장면을 제자들에게 옮겨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말씀하십니다.
마몬은 당시 일상적인 돈과 재산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불의의 재물”이라 부르며 현세의 돈이 불의와 쉽게 얽히고 참된 부요보다 작은 것임을 드러내십니다. 재물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그것을 나눔과 환대에 사용하면 돈은 사람을 지배하는 주인이 아니라 사람을 섬기는 도구가 됩니다.
누가복음에서 이 명령은 되갚을 수 없는 사람을 식탁으로 초대하라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과 몸이 불편한 사람을 잔치에 초대하면 그들이 갚지 못하더라도 의인의 부활 때 갚음을 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소유를 팔아 구제하고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하시며, 삭개오의 회복도 재산을 가난한 사람과 피해 입은 사람에게 돌려주는 행동으로 드러납니다.
따라서 친구를 사귄다는 말은 재물을 통해 외면받던 사람을 이웃과 공동체의 친구로 맞아들이라는 부름입니다. “영원한 처소”는 이런 나눔으로 드러난 하나님 나라의 삶이 마침내 하나님의 영원한 환대 안에서 완성되는 모습을 그립니다.
이어지는 10–12절은 재물을 지극히 작은 것, 불의한 것, 남의 것과 연결하고 참된 것과 너희의 것을 그보다 큰 것으로 대비합니다. 제자는 재물을 절대적인 소유처럼 붙드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은 것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액수가 크고 작음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재물을 정직하고 자비롭게 사용하며 하나님께 충성하는가입니다.
현재의 돈과 소유를 다루는 방식은 더 큰 것을 맡을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일상의 훈련장이 됩니다.
13절은 이 단락의 결론을 분명히 합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주인으로 섬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돈의 주인 자리를 하나님께 돌리고 돈을 이웃을 살리는 종으로 사용하라는 제자도의 요청입니다.
바로 뒤에서 돈을 좋아하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비웃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재물 사용은 단순한 생활 기술을 넘어 마음이 누구를 주인으로 섬기는지 드러냅니다. 오늘의 신자에게는 수입, 소비, 저축, 사업, 채무, 헌금과 구제가 모두 이 충성을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재물이 관계를 끊고 자신만 보호하는 벽이 될 수도 있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친구들”을 가난한 수혜자, 하나님 나라 공동체, 천사적 존재 가운데 어느 하나와만 일대일로 고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누가복음 14:12–14와 16:19–31은 가난한 이들을 우선 떠올리게 하지만, 16:9의 핵심은 재물로 맺어진 자비의 관계와 종말론적 환대를 연결하는 데 있습니다. 청지기가 깎아 준 부분이 불법 이자였는지, 자신의 수수료였는지, 지주의 원금 일부였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설이 있습니다.
Marulli가 검토한 채무 문서와 이자율 자료는 이자 감면설을 가능하게 하지만, 청지기의 정확한 이익 배분과 지역별 이자율을 확정할 자료는 부족합니다. 따라서 비유의 중심을 청지기의 장부 기술에 두기보다, 결산을 앞두고 현재의 자원을 미래의 환대와 관계를 위해 사용한 영리함에 두는 것이 적절합니다. 고대 밧과 고르의 정확한 부피는 시대와 산정 방식에 따라 차이가 있으므로, 3,200리터와 35,000리터는 IVP의 갤런·부셸 환산을 미터법으로 반올림한 교육적 근사치입니다.

13절은 이 단락의 결론을 분명히 합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주인으로 섬길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돈의 주인 자리를 하나님께 돌리고 돈을 이웃을 살리는 종으로 사용하라는 제자도의 요청입니다.
바로 뒤에서 돈을 좋아하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비웃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재물 사용은 단순한 생활 기술을 넘어 마음이 누구를 주인으로 섬기는지 드러냅니다. 오늘의 신자에게는 수입, 소비, 저축, 사업, 채무, 헌금과 구제가 모두 이 충성을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재물이 관계를 끊고 자신만 보호하는 벽이 될 수도 있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긴 것 중
내가 다시 볼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