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유월절 식탁에서 누가 크냐는 다툼이 일어나자, 예수께서는 이방 임금들의 지배 방식과 제자 공동체를 대비하신다. 식탁에 앉은 이가 더 커 보이는 관습 속에서 예수는 자신이 섬기는 자로 제자들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는 큰 자가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가 섬기는 자와 같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공동체에 책임과 질서가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지위가 타인을 지배하거나 영예를 확보하는 수단이 되지 않도록 권력의 방향을 바꾸는 말씀이다. 예수 자신이 식탁 가운데 섬기는 자로 계신 것이 그 기준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시험 가운데 함께한 이들에게 나라와 식탁과 보좌의 약속도 주신다. 그러므로 섬김은 낮은 이들을 영구히 침묵시키는 요구가 아니라, 약속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서로의 존엄을 세우는 지도력이다. 이 말씀을 학대적 복종이나 지도자의 무책임을 허용하는 말로 사용할 수 없다.
흔히 이렇게 읽는다 — 섬기는 자가 되라는 말은 피해자나 약한 사람이 부당한 지시에 말없이 복종해야 한다는 뜻이다.
본문이 말하는 것 — 예수께서는 지배와 권세 과시를 대조하며, 큰 자와 다스리는 자의 역할을 섬김으로 새롭게 하신다. 본문은 권력의 남용을 정당화하지 않고, 예수의 섬김을 지도력의 기준으로 둔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섬기는 지도력을 교회와 사회의 다양한 직분에 어떻게 적용할지는 공동체마다 다를 수 있다. 누가의 직접 강조는 누가 더 큰가를 다투는 제자들에게 예수의 섬김을 공동체 질서의 기준으로 제시하는 데 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시험 가운데 함께한 이들에게 나라와 식탁과 보좌의 약속도 주신다. 그러므로 섬김은 낮은 이들을 영구히 침묵시키는 요구가 아니라, 약속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서로의 존엄을 세우는 지도력이다. 이 말씀을 학대적 복종이나 지도자의 무책임을 허용하는 말로 사용할 수 없다.
이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긴 것 중
내가 다시 볼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