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누가복음 21:24의 ‘이방인의 때’는 예루살렘의 포위·칼·사로잡힘·이방인들에게 밟힘이라는 바로 앞의 전쟁 언어 안에 놓여 있다. 이 표현은 추상적인 민족 이론보다 예루살렘의 고난과 열방의 권세가 이어지는 시기를 가리키며, 누가는 그 끝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때’로 말한다.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는 예루살렘이 이방인들에게 밟히는 고난의 기간이 영원한 운명이 아니라 하나님이 아시는 한계 안에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기간의 달력, 특정 국가의 목록, 또는 현대 정치 사건을 하나씩 해독하는 방법을 제자들에게 주시지 않는다. 이어지는 인자의 날 말씀은 공포에 빠진 계산보다 속량을 바라보며 깨어 있는 소망으로 응답하게 한다.
이 표현은 유대 민족이 하나님에게서 영구히 버림받았다는 선언도, 이방 민족이 우월하다는 선언도 아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방인의 충만함과 이스라엘을 함께 말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강조한다. 두 본문을 억지로 동일한 시간표로 만들기보다, 하나님이 민족들을 향해 자비와 신실하심으로 일하신다는 더 넓은 증언 안에서 조심스럽게 읽는 편이 낫다.
흔히 이렇게 읽는다 — 이방인의 때는 현대 국가·전쟁·성지의 변화를 하나씩 대입해 종말 날짜를 계산하라는 비밀 암호이며,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우열을 판정한다.
본문이 말하는 것 — 누가복음은 예루살렘의 고난과 인자의 날을 함께 말하지만 날짜나 국가별 해독표를 주지 않는다. 이 표현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고난의 기간을 말하며, 제자에게 요구되는 응답은 공포와 민족 우월감이 아니라 소망과 깨어 있음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이방인의 때’의 시작과 끝을 역사적 사건, 교회 시대, 장차의 종말 가운데 어디에 더 가깝게 둘지는 해석 전통마다 다르다. 본문은 종말을 말하지만 날짜를 제공하지 않으며, 어느 해석도 유대인이나 다른 민족에 대한 멸시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이 표현은 유대 민족이 하나님에게서 영구히 버림받았다는 선언도, 이방 민족이 우월하다는 선언도 아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방인의 충만함과 이스라엘을 함께 말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강조한다. 두 본문을 억지로 동일한 시간표로 만들기보다, 하나님이 민족들을 향해 자비와 신실하심으로 일하신다는 더 넓은 증언 안에서 조심스럽게 읽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