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여우에게
어떤 바리새인들은 헤롯이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떠나라고 경고합니다. 예수는 그 통치자를 ‘저 여우’라고 부르며, 오늘과 내일에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고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겠다고 답하십니다. 이어 자신은 예루살렘을 향한 길을 계속 가야 하며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법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Luke 13:31-33에서 바리새인들의 경고가 예수를 보호하려는 뜻인지, 그를 떠나게 하려는 뜻인지는 서술만으로 판정하기 어렵습니다. 더 분명한 것은 예수가 헤롯의 위협 때문에 자신의 사역 경로를 바꾸지 않으신다는 점입니다. 예수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현재의 사역을 말한 뒤, 예루살렘을 향해 가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저 여우’는 헤롯 안티파스를 가리키는 호칭입니다. 이 말 하나를 특정한 동물 성격의 암호로 고정하기보다, 예수가 통치자의 살해 위협을 두려워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낮추어 부르는 대결의 언어로 읽는 편이 안전합니다. 오늘·내일·제삼일은 예수의 사역과 완성을 향한 움직임을 압축해 말하며, 달력의 정확한 사흘을 계산하라는 지시는 아닙니다.
Luke는 앞서 헤롯이 예수에 관해 듣고 보기를 원했다고 기록하고, 수난 장면에서는 헤롯이 예수를 보고 기뻐했으나 조롱한 뒤 돌려보냈다고 전합니다. 요세푸스도 안티파스가 세례 요한의 영향력을 정치적 불안으로 여겨 처형한 전승을 보존합니다. 이런 배경은 Luke 13의 경고가 실제 통치 권력의 위협 속에서 들린다는 점을 비추지만, 예수의 죽음이 헤롯의 손에서 일어났다고 바꾸어 말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Luke 13의 결말은 예수의 길을 예루살렘과 선지자 죽음의 문제에 연결합니다.
흔히 이렇게 읽는다 — ‘여우’라는 표현은 어떤 정치적 반대자에게도 모욕과 비인간화를 정당화하는 신앙 언어라는 해석.
본문이 말하는 것 — Luke 13:31-33에서 예수의 말은 헤롯의 살해 위협 속에서도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며 예루살렘으로 가는 자신의 사명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응답이다. 이 한 호칭은 폭력·비인간화·정치적 증오를 위한 일반 규칙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여우라는 호칭이 교활함, 파괴성, 하찮음 가운데 어느 뉘앙스를 가장 강하게 담는지와 오늘·내일·제삼일의 정확한 시간 범위에는 논의가 있다. Luke의 흐름은 헤롯의 위협보다 예수의 치유·축출 사역과 예루살렘을 향한 필연적 길이 우선함을 보여 준다.

Luke는 앞서 헤롯이 예수에 관해 듣고 보기를 원했다고 기록하고, 수난 장면에서는 헤롯이 예수를 보고 기뻐했으나 조롱한 뒤 돌려보냈다고 전합니다. 요세푸스도 안티파스가 세례 요한의 영향력을 정치적 불안으로 여겨 처형한 전승을 보존합니다. 이런 배경은 Luke 13의 경고가 실제 통치 권력의 위협 속에서 들린다는 점을 비추지만, 예수의 죽음이 헤롯의 손에서 일어났다고 바꾸어 말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Luke 13의 결말은 예수의 길을 예루살렘과 선지자 죽음의 문제에 연결합니다.
이 시대의 힘 앞에서
하나님은 어디 계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