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고대 건축 현장에서 건축자들은 돌의 모양과 용도를 살펴 쓸 돌과 버릴 돌을 가렸습니다. 따라서 ‘건축자들이 버린 돌’은 우연히 남겨진 돌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건물에 맞지 않는다고 판정한 돌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시편 118편은 하나님께서 바로 그 돌을 건물의 핵심적 자리를 차지하는 머릿돌로 삼으셨다고 노래합니다.
마태복음의 첫 청중에게 이 반전은 지도자들의 예수님 평가보다 하나님의 판정이 최종적이라는 선언으로 들렸습니다.
마태복음 21:42는 악한 농부들이 주인의 아들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인 직후에 나옵니다. 예수님은 포도원의 장면을 건축 현장으로 바꾸어 시편 118:22-23을 인용하십니다. 비유의 아들은 건축자들에게 버림받은 돌과 겹치고, 포도원을 맡은 농부들은 하나님의 집을 세운다고 자처하면서 아들을 거절한 지도자들과 겹칩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이 비유가 자신들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는 45절이 이 연결을 분명히 합니다.
시편 118편에서 반전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건축자들은 돌을 버렸지만, 여호와께서는 그 돌을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배척과 죽음은 인간의 판정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거절당한 아들을 다시 세우시고 자신의 구원 역사의 중심에 두시는 부활과 높아짐이 이 말씀 안에 앞서 비칩니다.
마태복음 21장은 같은 시편을 두 번 울립니다.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무리는 시편 118:25-26의 말로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환영하지만, 성전 지도자들과의 충돌 뒤에는 시편 118:22-23의 ‘버린 돌’이 인용됩니다. 같은 시편이 환영과 거절을 함께 묶으며, 예수님을 향한 사람들의 엇갈린 반응과 그 반응을 뒤집는 하나님의 판정을 보여 줍니다.
사도행전 4:10-12는 이 인용의 정경적 의미를 직접 풉니다. 사람들에게 버림받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며, 그분이 ‘너희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자 머릿돌이라고 선포합니다. 베드로전서 2:4-8은 이 이미지를 교회에까지 펼쳐, 예수님을 사람에게는 버림받았지만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받은 보배로운 산 돌로 부르고 신자들도 그분에게 연결된 산 돌로 세워진다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2:19-22도 그리스도를 모퉁잇돌로 삼아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중심은 예수님이 단지 중요한 인물이라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사람의 권위가 예수님을 배척해도 하나님은 그 배척을 뒤집어 예수님을 새 공동체의 중심과 기준으로 세우십니다. 이 돌에 어떻게 응답하는지는 하나님 나라의 건축에 참여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판정과 충돌하는가를 드러냅니다.

시편 118편에서 버린 돌이 원래 이스라엘 공동체, 왕, 혹은 대표적 의인을 가리키는지는 논의가 이어집니다. 복음서가 그 이미지를 예수님의 거절과 하나님의 높이심에 적용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마태복음 21:44는 중요한 사본들이 보존하지만 일부 고대 증거와 P104가 생략한 것으로 분석되어 현대 비평판에서 괄호 처리됩니다.
그러므로 이 절의 이사야 8장과 다니엘 2장 공명은 기술적 논점으로 구분하며, 21:42의 핵심 해석은 시편 118편 인용과 21:45의 문맥, 사도행전 4장과 베드로전서 2장의 정경적 적용 위에 세웁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중심은 예수님이 단지 중요한 인물이라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사람의 권위가 예수님을 배척해도 하나님은 그 배척을 뒤집어 예수님을 새 공동체의 중심과 기준으로 세우십니다. 이 돌에 어떻게 응답하는지는 하나님 나라의 건축에 참여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판정과 충돌하는가를 드러냅니다.
이 장면이 가리키는
더 큰 이야기는 무엇인가요?